장애인 보조 앱 개발, 왜 한국은 뒤처졌을까?
장애인 보조 앱 개발, 왜 한국은 뒤처졌을까?
장애인을 위한 보조 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앱과 기기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은 이러한 흐름에서 다소 뒤처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세계적인 IT 강국으로 불리지만, 정작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술 개발에 있어서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지체장애인 등을 지원하는 앱 시장에서는 글로벌 대비 부족한 콘텐츠와 서비스의 질, 개발사의 관심 부족이 눈에 띄게 드러난다.
과연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으며, 어떻게 하면 이 격차를 줄일 수 있을까?
장애인 보조 기술 시장, 글로벌과 한국의 현격한 차이
글로벌 시장에서는 애플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형 기업들이 앞다퉈 장애인 보조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애플은 iOS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VoiceOver', 청각장애인을 위한 '실시간 자막 기능' 등 다양한 접근성 기능을 운영체제에 기본 탑재했다. 미국, 유럽, 일본에서는 이러한 기능들을 활용한 다양한 앱 개발도 활발하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러한 접근성 기능을 기반으로 한 앱 개발이 턱없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을 위한 내비게이션 앱은 미국에서는 20개 이상 상용화되어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제대로 작동하는 앱을 찾기도 어렵다.
한국 내 개발사들의 기술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기술 수준에서는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문제는 '시장성 부족'이라는 인식과 '사회적 관심의 결여'에 있다. 장애인을 위한 기술은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이다.
정부 정책과 제도의 한계, 실질적 지원은 부족하다
한국 정부는 ‘장애인 정보 접근성 강화’라는 목표 아래 매년 다양한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앱 개발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 이유는 첫째, 장애인을 위한 앱 개발에 필요한 R&D 지원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해당 앱이 출시된 이후의 유지보수나 마케팅에 대한 지원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장애인의 피드백을 반영하는 프로세스 자체가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통 안내 앱을 개발했다고 해도, 실제 장애인이 이용해 보기 전까지는 사용자 경험을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개발사가 이러한 사용자 테스트를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예산 지원이 전무하다. 이러한 현실은 스타트업이나 중소 개발사들이 장애인 보조 앱 개발에 뛰어들기를 꺼리게 만든다.
또한, 기존에 개발된 앱들이 구글플레이나 앱스토어에서 노출되지 못하고 묻히는 경우가 많다. 이 역시 마케팅 자원 부족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미국에서는 정부나 비영리 단체들이 이러한 앱들의 유통을 도와주는 반면, 한국에서는 이런 지원이 거의 없다.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 부족, 진짜 필요한 앱은 개발되지 않는다
한국의 장애인 보조 앱 개발이 뒤처지는 또 다른 이유는 '당사자의 참여 부족'이다. 대부분의 앱 개발이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이뤄지다 보니, 실제로 필요한 기능과는 동떨어진 앱이 출시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을 위한 실시간 수어 번역 앱이 있지만, 정작 수어 사용자들이 느끼는 번역의 정확도는 낮은 경우가 많다. 이는 장애인의 직접 참여 없이 개발된 결과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장애인이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여 앱을 함께 설계하는 구조가 활성화되어 있다. 장애인 디자이너, 개발자, 기획자가 실제로 팀에 참여하며 자신들의 삶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장애인을 위한 앱 개발이 ‘시혜적 복지’의 일환으로만 여겨지고 있어, 당사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어려운 구조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아직 '보조 기술의 민주화'라는 관점에서는 갈 길이 멀다. 단순히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중심이 되는 기술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해법 제시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첫째, 정부 차원에서 장애인 보조 기술 스타트업에 대한 펀딩과 인큐베이팅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단순한 과제 지원이 아니라, 장기적인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위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장애인을 위한 앱 개발을 대학이나 직업훈련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실질적인 개발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 셋째, 장애인 단체와 협업해 당사자의 참여를 전제로 하는 개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기업의 ESG 평가 항목에 '접근성 기술 기여'를 포함시켜 보조 앱 개발에 대한 민간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다섯째, 미디어를 통해 장애인 보조 앱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적극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겪지 않는 문제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를 공론화하면 자연스럽게 기업과 사회의 관심도 늘어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시민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장애 체험 플랫폼을 제공함으로써 개발자들이 실제 문제를 체감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도 있다. 시뮬레이션 앱을 통해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체장애 상황을 가상 체험하게 하면, 개발의 방향성이 자연스럽게 사용자 중심으로 이동할 수 있다.
맺으며
한국의 장애인 보조 앱 개발이 뒤처진 이유는 기술력 부족이 아니다. 사회적 인식, 제도적 한계, 참여 구조의 미비 등 복합적인 원인이 얽혀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정부와 기업, 개발자, 그리고 장애인 당사자가 함께 협력하여 생태계를 재구축한다면, 충분히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보조 기술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더 이상 늦기 전에, 장애인을 위한 기술 개발이 사회 전체의 혁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